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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의 역사는 인류에게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과학과 경제의 발달은 인류문명의 높이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나 반면 이데올로기와 민족, 종교, 경제적 갈등과 경쟁을 비이성적인 전쟁과 폭력에 의해 해결하고자 했던 무자비한 세월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보여주었던 비약적인 생산력은 상대적으로 빈곤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회주의를 무너뜨렸고, 이에 19세기 말엽 자본주의의 급격한 팽창은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한 갈등의 해법을 모색할 여유도 없이 전 세계를 경제적 힘과 초월의 논리로 다그쳤다. 이러한 자본주의 논리는 마침 일제치하와 해방, 동족상잔의 역사적 대 혼란기를 겪으며 피폐해진 한국사회에서도 역시 자립과 재건이라는 구호를 통해 그 무엇보다 설득력이 있게 역설되었음은 당연했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가치를 상위하는 지상명제였다. 그 결과, 현재 한국사회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자본주의 국가 상호간의 격화될 ‘신제국주의’ 경쟁에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대응할 정도로 그 경제적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디자인에 요구되었던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즉, 지난 100년의 한국디자인은 한마디로 상업적 재화를 끌어내는 사적 기술이었다. 그 시작은 화신백화점의 광고나 금성사의 공업의장이었으며 해방 이후의 상업 디자인, 70·80년대의 경제개발과 수출증대를 지원하기 위한 포장디자인으로 발전하면서 90년대의 산업디자인 혁명, 현재의 디자인 경쟁력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디자인은 시대적 변환의 어느 시점에서나 상업주의의 최전선에서 광고, 선전, 상품, 경영의 전략적 수단으로서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적극 기여해 왔다. 따라서 과거 우리의 디자인 교육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산업경제의 현장에 기업의 조형기술자로서 투입될, 이른바 산업역군을 기르는 데 1차적 목표를 집중해왔으며 이는 현재까지 고등교육의 영역에서 별다른 인식의 변화 없이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세기의 급변하는 양상은 새로운 디자인의 가치체계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보화된 오늘날의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속도에서 뿐 아니라 사회조직과 운영의 전반적인 원리, 그리고 삶의 기본적인 가치관까지 아우르는 질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도시유목민’의 미래를 예측하며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다양한 문화와 사상, 그리고 가치가 유동적으로 결합하고 해체하는 복잡다단한 문명의 도래를 내다보았듯이 이미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문화의 네트워킹 등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문화인류적인 책임과 새로운 가치철학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순한 물질만능의 무한경쟁체제에 의해 일률적으로 대량생산되던 과거의 ‘기술디자인’은 이제 더 이상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수 없어 그 산업적 효용성에 있어서도 생명력이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불완전성이 여실한 작금의 경제상황과 더불어 무한경쟁 논리에 의해 오랜 세월 외면당해 이미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사회적 모순과 인간성 상실, 전 지구적 생명력의 고갈을 볼 때, 그 과정에 적극 동조했던 과거 우리의 디자인에 대한 자기반성과 새로운 접근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하다.
결국 문제는 문화행동으로서의 정당성, 그로 인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기정체성을 새롭게 그려나갈 수 있는 디자인이냐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요구되는 디자인은 단지 산업제품의 경영전략 차원에서 새로운 호기심의 유발이나 기술 우위를 자랑하기 이전에 인간과 제품, 인간과 인간 간의 유기적 관계를 정의하고 유도하는 근본적 체계의 차원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삶을 구성하는 사상과 감정, 행동과 패턴의 바람직한 의미체계를 모든 가능한 물질적 조건과 상황에 반영하여 보다 인간중심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실천행동으로서 디자인을 정의하고 또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디자인은 더 이상 모호한 기준으로 국제적 순위다툼에만 집착하거나 뚜렷한 사회적 철학 없이 어설픈 공공성을 가시화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디자인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가 말한 대로 ‘거리마다, 광장마다 사람들의 감각을 고취시키고 문화와 평등을 향한 창조적 개성의 자유언어로서 세상의 모든 곳에 적용되어야 할’ 디자인의 진정한 본질을 회복할 때이다.
황순재/(사)한국디자인정책개발원 선임연구원
